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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s no one LESS 3.18 – 4.16.2023

        

레스의 미끌미끌한 사진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들
김현호, 사진 비평가

당신을 환영한다. 믿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아마 레스도 그러할 것이다. 세상에는 누군가를 환대하기 위해서 올챙이와 짓무른 과일, 뒤틀린 나무, 빨간 입술 같은 것들을 찍은 사진을 정성스레 보여주는 이가 있는 법이다. 혹시라도 벽에 걸린 사진 속, 혹은 사진과 사진 사이의 빈 벽 어딘가에 당신이 알아채지 못하는 암호문 같은 게 감추어져 있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은 애시당초 존재했던 적도 없다. 스냅 사진의 계보나 사진의 미학 같은 것을 신나게 읊어대는 이들은 이 공간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청춘, 날것, 육체와 같은 찌그러진 단어들 역시 별 차이는 없다. 이 점액질의 사진들은 허공에 떠도는 그들의 말들 사이로 미끄러지듯 흘러가버릴 것이다.
  어느 늦은 저녁, 한강진역 앞의 인파를 헤치고 새로 지은 거창한 건물들 사이에 난 작은 입구로 들어가 어두운 계단을 두어 층 내려가면, 레스의 오래된 작업실이 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환하게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와서 악수를 청한다. 형식적인 절차는 그걸로 끝이다. 그는 의자를 권하고, 자신도 앉는다. 그리고 당신을 위한 글을 써줄 것을 내게 부탁한다. 나는 미끈미끈한 액체처럼 의자 사이로 흘러내리고 싶어진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레스 당신은 마치 항아리 같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손잡이가 없어서 들어올리기 좀 힘든데요. 원체 좀 미끌거리시기도 하고. 그러고는 늙은 롤랑 바르트의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평생 프루스트를 동경했던 바르트는 언젠가부터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마들렌을 한 입 베어무는 순간, 과거의 복잡한 시공간이 마치 견고한 건축물처럼 소환될 수 있는 걸까? 과거는 훨씬 더 파편적이고 불확실한 게 아닐까? 글쓰기는 결국 지나간 시간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미화하는 일이 아닐까? 거짓된 것을 가지느니 차라리 아무 것도 가지고 싶어하지 않아했던 매부리코의 노인은 주름진 손으로 이렇게 썼다.

  나는 이 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결국 문학이 되고 말까 봐 두렵기 때문에. 혹은 내 말들이 문학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 롤랑 바르트, 김진영 옮김, 『애도 일기』, 이순. 2012. 33쪽.

나는 변명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도 같다) 이 사진들을 언어로 해석하면 그 불안정하지만 다채로운 의미의 세계가 손상되는 게 아닐까? 몇 년 전에는 레스의 사진이 왜 다른지, 그 리듬과 페이스가 어떻게 독특한지, 패션 매거진의 레스와 전시장의 레스가 어떻게 이어지거나 나뉘는지에 대해 꽤 오래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해석들이 사진을 즐겁게 바라보는 일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그저 이 쨍한 사진들을 그저 어렴풋이 바라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은 잘도 흘러가는 중이다.
  하지만 레스는 세속의 온갖 반짝이는 이미지들 사이를 지나 이곳에 온 당신에게 단 한두 가지의 실마리라도 줄 수 있기를 바랐다.(사실 그 현란한 사진을 찍는 이들 중 여전히 레스는 가장 앞줄에 서 있다) 왜 당신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이 하필 올챙이와 원숭이, 그리고 꽃과 벗은 몸을 찍은 사진들인지. 그것들은 어떤 방식으로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며 녹아내리는지, 레스 자신은 어떤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었던 것인지 하는 것들을.
  하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듣지 않으려 노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간을 가득 메운 이 사진들이 지닌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의미를, 설령 작가라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당신이 걷고 있는 이 전시장은 마치 여러 개의 창문이 난 어두운 방처럼 느껴진다. 사진들은 마치 창문처럼 레스의 카메라 앞에 있었던 시공간을 보여주는 듯하다. 우리는 그 이미지로부터 레스의 움직임을 되짚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오랫동안 그의 사진들 앞에서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빠르지는 않은데. 아니, 빠른가? 빠른 것과는 좀 다른가? 카메라를 쥔 레스는 느리고 물렁물렁하게 흘러다니다가도 갑자기 단단하게 변해서 날카롭게 돌진한다.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말이다. 그러고는 다시 천연덕스럽게 액체로 돌아가 세상을 떠다닌다. 마치 그의 사진 속, 물 위에 떠 있는 몇 방울의 기름처럼.

There's no one LESS 3.18 – 4.16.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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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a long time, 2021,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101.6 × 76.2cm (104.6 × 79.6cm framed), Edition of 7 + 2 AP

There’s no one no.08, 2016,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50.8 × 60.96cm (53.6 × 63.7cm framed), Edition of 7 + 1 AP

Sunshine kiss_no209, 2017,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30.48 × 40.64cm (33.5 × 43.5cm framed), Edition of 3 + 1 AP

Thin ice, 2022,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76.2 × 76.2cm (78.8 × 78.8cm framed), Edition of 7 + 1 AP

A man with a cigarette, 2016,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127 × 101.6cm (131 × 105cm framed), Edition of 5 + 2 AP

A scratch on the window, 2020,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76.2 × 76.2cm (78.8 × 78.8cm framed), Edition of 7 + 1 AP

Blue cherry blossoms, 2021,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76.2 × 76.2cm (78.8 × 78.8cm framed), Edition of 7 + 1 AP

Rain and tadpoles, 2020,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101.6 × 127cm (105 × 131cm framed), Edition of 7 + 2AP

Broken fruits, 2016,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127 × 101.6cm (131 × 105cm framed), Edition of 7 + 2 AP

A conner of the park, 2021,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127 × 101.6cm (131 × 105cm framed), Edition of 7 + 2 AP

There’s no one, 2016,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60.96 × 50.8cm (63.7 × 53.6cm framed), Edition of 7 + 1 AP

A reclining man, 2016,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60.96 × 50.8cm (63.7 × 53.6cm framed), Edition of 5 + 2 AP

Black banana, 2020,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76.2 × 76.2cm (78.8 × 78.8cm framed), Edition of 7 + 1 AP

Cherry lips, 2017,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76.2 × 101.6cm (79.6 × 104.6cm framed), Edition of 7 + 2 AP

Wound, 2015,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101.6 × 76.2cm (104.6 × 79.6cm framed), Edition of 7 + 2 AP

A pond in a park, 2020,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60.96 × 50.8cm (63.7 × 53.6cm framed), Edition of 7 + 2 AP

Trees no.09, 2016,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30.48 × 40.64cm (33.5 × 43.5cm framed), Edition of 5 + 2 AP

Trees no.02, 2016,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30.48 × 40.64cm (33.5 × 43.5cm framed), Edition of 5 + 2 AP

Cityview, 2011,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101.6 × 127cm (105 × 131cm framed), Edition of 7 + 2 AP

Closed eyes, 2020,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40.64 × 45.72cm (43.2 × 48.5 cm framed), Edition of 5 + 1 AP

A purple apartment, 2020,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60.96 × 50.8cm (63.7 × 53.6cm framed), Edition of 5 + 2 AP

Fish and trees, 2020,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60.96 × 50.8cm (63.7 × 53.6cm framed), Edition of 5 + 2 AP

Beach, 2020, Pigment ink on Archival Paper, 101.6 × 76.2cm (104.6 × 79.6cm framed), Edition of 7 + 2 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