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사원 뒤편, 깊숙한 경사로에 접어들자 문패인 양 걸린 붉은 캔버스가 보인다. 흰색 대문을 열고 서너 계단을 내려갔다. 이곳은 배재민의 집이자 작업실이다.

그는 거실에서 두 친구와 함께 배접을 준비하는 중이다. 양말 뒤축은 투명하게 까지기 직전이며, 머리 뒤쪽은 자고 일어난 모양대로 눌려있다.

배접은 쉽게 말해 그림이 그려질 판을 만드는 작업이다. 두꺼운 한지를 여러 겹 포개어가며 풀을 바르고, 얇은 한지를 쌓고, 마지막으로 천이나 삼베를 깔아 캔버스를 완성한다.

분무기로 바닥에 물을 뿌리는 배재민에게 캔버스를 사지 않고 직접 만들어 쓰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배접이 사람 뼈에 피부를 입히는 것과 같다고 묘사한 후 이런 말을 덧붙인다.

“이런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미대는 불교 미술 학과 뿐일 겁니다.” 그와 친구들은 고르게 젖은 바닥에 최초의 한지를 깐다. 그림이 시작되고 있었다.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전, 배접 과정을 본 것은 일종의 행운이자 아이러니다. 물과 풀, 그리고 한지를 섬세하게 쌓아가는 과정과 그의 작업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Half Circles>와 <Horizon> 시리즈의 핵심에는 그리고 밀어내는, 쌓았다가 무너뜨리는 연속적이고 반복적인 행위가 존재한다.

그러니까 배재민은 지금 그 모든 힘이 충돌할 수 있는 무대를 짓고 있었다.

2018년 그의 삶은 이유 없이 타고 벌거벗겨진채 병원 침대에 눕혀졌다.

<Half Circles>는 화재 사고 후 그가 처음 작업한 작품이다. 그가 치료실에서 겨우 눈을 떴을 때 본 것은 붉은 반원이었다.

“피부가 녹아 어렵게 눈을 떴는데, 반원 모양의 해가 보이더군요. 푸르고, 붉은 선도. 해가 덜 떠서 그런지, 눈에 피가 끼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화상을 치료하며 마약성 진통제를 맞는 동안 그는 종종 환각 속에 노출됐다. 시야에는 아미타와 사천왕, 여러 불두가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목격한 장면을 캔버스 위에 옮기는 일이 그에게는 필요가 아니라거부할 수 없는 추동이었을 것이다.

배재민이 종종 사용하는 묘사처럼 그림과 자신이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라면, 환각이 지배하지 않는 곳에서 두 눈과 마주하라고 그림이 그를 이끈 것이다.

배재민은 <Horizon>을 통해 수평선을 가져왔다. 모든 것이 태어나고 잠드는 광대한 선. 용, 사자상, 파도, 인간 그리고 또 많은 것들, 이 선 위에서 태어나고 솟아오르고

스러지는 모든 것 그는 이 선 앞에서 한계를 지닌 인간으로 순응하며 동시에 불복한다.

그의 불복은 곧 응시이다. 시간과 공간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미끄러질 때 그의 응시는 다시 질문이 된다. 그리고 질문이야말로, 수평선 위에서 모든 것들이 저물 때

이 세계에서중력의 방향에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된다.  전시를 앞두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가 먼저 무언가 물었던 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몇 가지는 깊이 남아 있다.

그 질문 중 하나를 여기에 적고 싶다.

“왜 우리가 살아있는 것만으로 세계가 증명된다고 생각합니까?”